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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6일 주일예배 설교 | 김종윤 목사 | 2025-1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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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8:9-14절 개역개정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무겁게 다가온 한 주였습니다. ‘하룻 밤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겠냐.’고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강건하시길 다시 기도하게 됩니다. 유독 계절이 달라지고 있는 환절기에 일어나는 이런 생각지 못한 일들은 변화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겐 결코 쉽지않은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항상 똑같기를 바라지만 수시로 변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이 됩니다. 과연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개혁과 변화의 힘을 어디에서부터 받을 수 있을지? 깊이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 의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말씀을 하시는지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점에서 간단합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선언을 넘어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법적인 선언입니다. 이는 특히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극명한 중요성을 가집니다. 의로움은 더 이상 죄의 권세와 그 심판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의롭게 하심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의 신분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분의 회복은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성전에 올라간 사람이 보여준 두 종류의 감사와 고백 – 형식이 아닌 내용이 문제입니다.
의로움의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주님은 특별히 성전에 올라갔던 두 사람의 사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서서 따로 기도하면서 자신이 행했던 여러 가지 선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디를 보아도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적인 모습에 있어서나 심지어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세울 것,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세리는 눈을 들어 감히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리새인과 세리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었습니다.
∙ 자기를 높이는 자와 자기를 낮추는 자 – 남을 낮춘다고 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것과 함께 본문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멸시한다고 하는 것은 그 가치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면서 비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게 되는 걸까요?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는 당당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인정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깍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을 낮춘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는 그렇게 세울지 몰라도 하나님의 의는 긍휼 위에 세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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