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방법이 중요합니다.
그걸 알아야 쉽게 해결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방법이 안보이면 곧잘 방법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방법이 없다고 하는 말은 더이상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법에 목을 매고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지만
주님께 중요했던 것은 언제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유혹할 때 사용했던 것은
바로 이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한 말은 ..
저걸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는 손쉬운 방법을 가지고 사단은 유혹해왔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또 어떻습니까?
그가 실패했던 것은 언제였습니까?
방법에 집착했을 때가 아닙니까?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후손을 얻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브람과 사래는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의 방법을 생각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갈이란 여인을 통하여 자식을 얻어보려고 하는
이상한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따로 있지 않았습니까?
100세나 되어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다른 방법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그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기억해 보십시오.
그가 100세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이 갑자기 달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도무지 말도 안되는 이런 명령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그가 한 일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두르고
사환과 함께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산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도데체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인지.
한번쯤 물을 수도 있고 따질 수도 있잖아요.
뭔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만약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께 따져야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질 않습니다.
방법은 오로지 하나님 그분께 맡겨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조차 아버지인 자신에게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습니까?”하면서
방법에 대하여 물을 때조차도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고
자신에게 들려온 말씀에 묵묵히 순종합니다.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니까?
방법에대한 걱정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미래가 걱정 되십니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로 인해 골치 아프십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찌 방법을 몰라 염려가 되십니까?
바로 그부분을 내려놓으십시오.
뾰족한 방법을 먼저 찾지 말고 말씀하시는 그분,
나의 삶을 향한 놀라운 계획과 뜻을 가지고 말씀하시며
인도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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