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월 26일 주일말씀 | 김종윤 목사 | 2022-06-26 | |||
|
|||||
|
오늘의 말씀 (2022. 6. 26)
말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에는 단순히 감정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지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는 속담처럼 때로 한마디의 말로 운명이 갈리기도 합니다. 어떤 말은 칼보다 무섭습니다. 반면 또 어떤 말은 상처를 치유하고 아픈 마음을 회복시켜줍니다. 말에는 키우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말로써 창조하셨고 말에 생명을 담아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두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는 예수를 믿게 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경을 통해 말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말의 힘을 올바로 활용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 사명으로 살면 언제나 좋은 때입니다.
사람들에게 붙들린 바울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하지만 한바탕 소동이 일자 성전 옆에 있던 안토니오 요새의 군인들이 현장으로 출동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바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난 군중들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영내로 끌려가던 바울을 뒤따라가면서 계속해서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내로 들어가기 전 바울은 자신을 끌고 가는 천부장에게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 때야말로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로 특별하게 좋은 때를 찾지 마십시오.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고 헌신하기로 하면 언제나 좋은 때입니다.
∙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 할 말이 있어야 상황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당시 천부장은 바울이 소요를 일으키고 광야로 도망친 애굽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왜 붙들렸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먼저 천부장에게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시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천부장은 바울의 부탁을 꼭 허락해줄 이유는 없었습니다. 공연이 말하게 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점점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단호하고 분명한 바울의 입장과 자세였습니다. 그는 비록 결박되어 붙들려 있었지만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 내가 하는 말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마침내 끌려가던 바울은 발언권(?)을 얻어 요새로 올라가는 층계 위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 말 성경으로 번역된 단어인‘변명’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변명이라고 하는 어감이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아폴로기아’라고 하는 단어는 일어난 사건이나 행위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해명하여 오해를 바로잡는다고 하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하여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하여 적극 해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상황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하는 말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