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2부말씀 | 김종윤 목사 | 2021-1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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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걷는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레임도 있지만 두려움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다가올 결과들이 어떠할지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경우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결과는 중요합니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동안에 있었던 수고와 노력들이 재해석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도 하루아침에 그냥 저절로 혼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과정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만들어 지게 된 것입니다. 더욱 오늘의 역사가 끝나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는 점에서 어떤 결과들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중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현재의 흐름과 방향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역사의 방향과 흐름을 결정하는 것일까요? ∙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 무엇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집니다. 2차 전도여행 중인 바울은 빌립보 성에서 뜻하지 않았던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한 여인은 주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서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던 루디아 였습니다. 반면 다른 한 여인은 귀신에 들려 점을 치면서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불편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여러 가지를 고심하다가 그 귀신들인 여인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다가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여인은 비로소 자유와 평안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의 점을 통하여 수익을 챙기고 있었던 주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무엇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반응을 하느냐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 언제나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혔다가 건강해진 여인을 생각하면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인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고 했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벌이가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당시의 재판장들에게 끌고 가서 모종의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주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것도 지극히 편향적인 내용으로 꾸며서 바울 일행을 고발합니다. 이처럼 많은 역사들 속에서 상황은 언제든지 뜻하지 않게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잘못 흘러가고 있던 방향을 바로 잡을 기회도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회를 살릴 수 있는가? 입니다. ∙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 현재의 반응이 앞으로 나아갈 역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이처럼 사건의 흐름이 왜곡되고 삐뚤어지게 되면 반드시 그 안에는 억울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런 사람들은 힘없고 빽 없는 이들입니다. 어디에 기댈 곳이나 하소연 할 곳도 없었으니 이들은 역사의 희생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실라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여인을 건강하게 고쳐주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린치까지 당하면서 빌립보의 깊은 감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억울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 떨어지게 되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기로 한 것입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현재의 반응은 앞으로 나아갈 역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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