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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0일 주일설교 | 김종윤 목사 | 2022-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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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경부 원로장로님의 장례예식으로 시작된 지난 한 주간은 다시 한 번 우리가 감사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생각지 않게 갑자기 돌아가신 백 장로님의 마지막은 단지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한 주간 슬픔과 어려움을 겪으신 모든 분들의 평안을 구하며 좋으신 우리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강과 다함이 없는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기도회를 정리하면서 우리가 이번에 맞는 감사절은 당당함을 회복하고 발견하는 감사절이 되길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당당함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 하늘에서 보이신 것 – 당당함을 위해서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체크하십시오.
당당함이란 사람이나 그 입장의 태도가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떳떳하고 정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올바로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이들로 인해서 눈살을 찌푸려서 그런지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삶을 대하는 이들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계속해서 살펴보는 바울에게는 오늘 우리에게는 없는 당당함이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피고인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심문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당당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당당함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 당당함을 위해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자신을 향하여 이를 갈면서 맹렬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던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주목해서 볼 수 있었던 스데반은 마지막 죽는 순간조차 당당했습니다. 삶을 구걸하지 않았고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스데반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바울 역시 오늘 본문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당당했습니다. 바울이 이럴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고난과 시련을 피할 수 있도록 돕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셨고 넉넉히 그 자리를 견디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은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 곧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실 것과 ... – 메시지가 분명하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바울의 당당함은 단순히 앞에 있는 고통과 시련을 참고 견디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신의 형편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얼 말한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삼가고 자숙을 하든지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바울은 거꾸로 그런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회심했던 다메섹에서부터 예루살렘 그리고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나아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와 그 능력을 담대하게 전할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용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 있는 메시지가 그만큼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가 분명하면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당당함을 회복하는 감사절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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