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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신년주일예배 김종윤 목사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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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dchurch.net/bbs/bbsView/7/6190695

 

하루 차이인데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다고 그동안 사용한 것들이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변화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무자비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과연 새롭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움은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이미 해 야래 새것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바 있습니다. 아무리 새날이 온다고 해도 정작 내가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새날은 어제[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참된 새로움은 날이 아니라 삶의 새롭게 될 때 찾아옵니다. 영원한 새것은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될 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 – 참된 위로의 시작은 공감입니다.  

 

2023년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어가 있습니다. 위로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위로(慰勞)란 남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주려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베푸는 것입니다. 세상에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삶이 각박해지고 자꾸만 낙심이 되는 까닭은 진정한 위로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위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위로의 말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름대로 위로한다고 하는 말들이 상대방을 더욱 아프고 괴롭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했던 최고의 위로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최악의 상황에서 통하는 참된 위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 참된 위로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진 그 절망의 밤을 보낸 그들 중에서 제일 먼저 움직였던 사람들은 사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남아있던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비겁한 행동을 막은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당시 바울이 했던 말을 살펴보십시오. 놀랍게도 바울에게 주된 관심은 자신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너희의 구원’이었습니다. 바울이 보여주는 위로는 어떻게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과 절박감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바울은 마음을 담아 따뜻하게 권면합니다. 하지만 바울 주면에서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보여주는 신실한 행동이었습니다. 

 

∙ 백부장이 .... 그들의 뜻을 막고 – 내가 생각했던 뜻이 막혀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살다보면 내 뜻이 가로막히고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기분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들이 더욱 나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위한 선한 뜻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속이 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 나의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더욱 크신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도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악의 상항에서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갈까 하여 호송중인 죄수들을 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반인륜적일지라도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런 군인들의 뜻을 막아섭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런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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