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바른 관계의 원리 | 김종윤 목사 | 2025-08-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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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4:7-14절 개역개정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관계란 둘 이상의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맺는 연결입니다. 이런 연결은 보이지 않는 끈과 같아서 우리의 존재와 삶을 형성하고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이 됩니다. 뿌리-흙, 줄기,잎- 햇빛,물 그리고 나무-열매와 같이 관계는 단순한 연관성을 넘어 본질과 의미를 규정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관계이지만 어떤 관계들은 직접적인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이들까지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관계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되며 이 관계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바른 관계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 엿보는 것을 통해서는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관계는 하루아침에 맺어지지 않습니다. 깊은 관계를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진실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의 집에 떡 잡수시러 가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관계를 위하여 가신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엿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파라테레오'(παρατηρέω)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주목하여 지켜보는 것',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감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엿보는 것을 통해서는 결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밀하게 엿보는 것이 또 하나의 문화가 된 세상에서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 자리를 따지기 시작하면 잃어버리는 게 더 많습니다. 어떤 곳이든 자리를 마련하고 정하는 일은 복잡합니다. 여러 가지로 고려하고 챙기고 살펴야 할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함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신 주님이 어디든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주님은 차라리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자리 때문에 부끄러운 일 당하지 말라고 하는 차원의 처세술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도 그렇지만 여전히 세상은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자리를 나누고 배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의 관계 시스템에 대하여 주님은 강력하게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자리가 중요하지만 섬기려고 하면 자리는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 ∙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 참 복은 주님이 갚아 주심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관계에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거나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관련된 이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낮아짐과 섬김이란 새로운 질서를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방보다 높아지려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며 모두가 존귀하게 여겨지는 자리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사회는 “상호호혜성”이란 원칙을 관계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내가 무엇을 베풀면 그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계산적인 관계만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군가를 초청하려면 갚은 것이 없는 사람들을 초청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이 갚아 주시는 것이 진짜 복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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